소설 노새 두 마리는 1970년대 도시화, 산업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이러한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된 삶을 산 도시 하층민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어린아이인 '나'를 통해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아버지의 고달픈 삶을 그리고 있다.
 

작가 최일남

(1932~   )
전북 전주 출생. 1953년 [문예]에 <쑥 이야기>가, 1956년 [현대문학]에 <파양>이 추천되어 등단하였다. 오랫동안 언론인으로 일했다. 최일남은 기자 생활을 하면서 소시민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썼다. 돈도 없고 명예도 없고 권력도 없는 소위 말하는 사회적 약자들이 대부분 소설의 인물들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흐르는 북>, <타령>, <노새 두 마리>, <장씨의 수염> 등이 있다.
 

소설의 줄거리

생계 수단을 노새를 이용해 연탄 배달을 하는 '나'의 가족은 도시 변두리에서 어렵게 생활한다. 그러다 새 동네가 생기면서 연탄 배달 주문도 늘어 좋았는 데 어느 날 노새가 달아나 버린다. 생계가 걸린 노새가 도망가 버린 이 상황에서 아버지와 '나'는 노새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찾지 못하고 돌아온다. 그 과정에서 그 누구도 우리 가족의 상황에 대해 관심을 갖거나 도와주려고 하지 않는다. 우연히 들른 동물원에서 '나'는 아버지가 일만 하고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노새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고, 아버지 역시 "이제는 내가 노새다"라고 말하면서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 의식을 드러낸다. 그렇게 결심하고 귀가하지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 다른 불행이다. 도망친 노새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힌 것이다. 경찰서로 오라는 말을 듣고 집을 나가는 아버지를 보며 '나'는 아버지와 노해 모두 도시적 삶에 적응하며 사는 것이 힘겨운 일임을 깨달으며, 언젠가 이웃이 했던 "비행기, 헬리콥터, 자동차가 빵빵거리는 도시에서 노새로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말을 떠올린다.
 
발단 - 새 동네가 들어서면서 동네에는 여러 변화가 생김
 
전개 - 새 동네 사람들과 구동네 사람들은 서로 어울리지 않고, 새 동네 사람들은 '노새'를 신기하게 여김
 
위기- 연탄 배달을 하던 중 '노새'가 도망치고 아버지와 나는 노새를 찾아 나서지만 찾지 못함
 
절정- 노새가 멀리 도망치는 꿈을 꾼 '나'는 다음 날 노새를 찾던 중에 들어간 동물원에서 아버지와 노새가 닮았다고 생각함
 
결말 - 자신이 노새가 되겠다며 웃던 아버지는 노새가 입힌 피해 때문에 순경이 찾아왔었다는 말을 듣고 집을 나감
 

소설에 반영된 사회. 문화적 상황

 
문학 작품에는 창작 당시의 모습이 반영되기 때문에 문학 작품을 읽으면 당시 사회의 모습을 알 수 있다. <노새 두 마리>는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1970년대 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은 통행금지 시간이 있었다는 것, 연탄을 때는 집들이 있다는 것, 마차가 점차 사라지고 삼륜차가 짐을 실어 나르는 모습을 들 수 있다. 또한 판잣집들과 문화 주택이 들어서며 동네가 형성되는 것을 보면 소설의 시대를 짐작할 수 있다.
 
 

1970년대의 사회, 문화적 상황

  • 변두리 동네에서 사는 사람들은 가난했다.
  • 가정에서 연탄을 연료로 사용했다.
  • 산업화, 기계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 야간 통행을 금지하는 시간이 있었다.
  •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노새와 아버지의 상징적 의미

 
노새와 아버지는 닮은 점이 많다. 노새는 연탄 때가 묻어 털이 검은빛을 띠고 있고 아버지도 연탄 때가 묻어 노상 시커먼 몰골을 하고 다닌다. 무거운 짐을 지고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 하는 노새와 노새를 끌고 힘겹게 연탄 배달을 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가는 아버지의 삶도 같다. 또한 자동차가 증가하는 도시에서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되었고 아버지도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에서 점점 소외되어가고 있다는 점이 닮았다. 이를 바탕으로 보면  '노새'와 '아버지'가 상징하는 것은 사회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된 존재를 의미한다.
 소설에서 노새는 한 마리만 나온다. 하지만 왜 제목이 '노새 두 마리' 일까?  '노새 두 마리'는 '나'의 가족이 기르던 노새와 '나'의 아버지를 뜻한다. 아버지도 노새와 다름없이 도시화와 산업화에 뒤처진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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